국밥툴즈

지역별 국밥지도

전국 국밥을 지도에서 찾아보기

지역을 눌러 보세요. 그 지역 국밥의 유래와 먹는 법, 그리고 근거로 삼은 출처를 함께 보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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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는 Natural Earth의 행정경계를 단순화한 것입니다

부산

돼지국밥

뽀얀 국물 · 돼지 뼈와 고기
돼지고기부추무침새우젓

한국전쟁을 거치며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이 전한 음식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같은 자료는 유래를 두고 설렁탕이 변했다는 설과 북한 지역 순대국이 변했다는 설도 함께 적습니다.

먹는 법 · 부추무침과 새우젓으로 간을 맞춰 먹습니다. 가게마다 국물이 달라 뽀얀 집과 맑은 집이 갈립니다.

헷갈리는 점 · 밀양 무안돼지국밥과는 이름만 같고 계보가 다릅니다. 부산은 돼지 뼈로 국물을 내지만 무안 쪽은 소뼈를 씁니다.

한눈에 보기

국밥지역주재료
평양 온반맑은 국물 · 닭고기 장국평양흰쌀밥, 닭고기, 녹두지짐, 버섯, 숙주나물, 실지단평양 4대 음식의 하나로 평양·평안남도 지방의 잔치 음식이자 향토음식입니다. 장국밥의 한 갈래로 분류됩니다. 북한 조리서에는 옥에 갇힌 인물에게 뜨끈한 국물밥을 대접했다는 데서 '온반(더운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이는 조리서에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가릿국밥맑은 국물 · 소갈비·양지·설깃살 육수함경남도함흥소갈비, 양지, 설깃살, 선지, 육회, 두부'가릿'은 갈비를 뜻하는 말입니다.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 항구도시로 번성해 자원이 풍부했던 함흥의 일부 부유한 가정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설렁탕뽀얀 국물 · 쇠머리·사골·도가니 등을 장시간 고아낸 육수서울쇠머리, 쇠족, 사골, 도가니, 사태, 양지머리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이 선농단에서 풍년을 비는 의식을 치를 때 모인 사람들에게 소를 잡아 끓인 국밥을 대접한 데서 비롯돼, 원래 이름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변했다는 선농단설이 있습니다. 고기를 삶은 물을 몽골어로 이르던 말('슈루'·'실러·슐루')에서 이름이 왔다는 몽골어 어원설도 있고, '설렁설렁 끓여 설렁거리며 먹는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는 민간어원도 함께 전합니다.
장국밥맑은 국물 · 양지머리를 우린 간장 육수서울쇠고기(양지머리·우둔), 무, 산적,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소금이 아니라 간장(醬)으로 간을 맞춘 국물이라 '장국밥'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름 때문에 흔히 장터(場)의 음식으로 오해받지만 실은 간장 맛을 낸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19세기 말 조리서 『규곤요람』에도 밥 위에 장에 조린 고기를 얹고 장물을 붓는 조리법이 기록돼 있으며, 제사 후 남은 음식을 한데 모아 먹기 편하게 만든 데서 비롯됐다는 유래도 함께 전합니다.
소머리국밥맑은 국물 · 소머리와 사골을 우린 육수경기도광주(곤지암)소머리, 사골, 무1970년대 중반 곤지암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부부가 병약한 남편을 위해 소머리를 고아 먹인 데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문헌으로 뒷받침되는 것은 아닌 구전입니다. 1980년대 초부터 곤지암읍에 식당이 하나둘 들어서며 지금의 소머리국밥 골목이 형성됐습니다.
양평해장국붉은 국물 · 소 내장과 선지를 넣은 얼큰한 육수경기도양평소 내장, 선지, 콩나물, 우거지조선시대부터 한우로 유명했던 양평에서, 고기 맛 못지않게 소의 내장과 선지를 주재료로 한 해장국도 맛있기로 소문나 한양까지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집니다.
백암순대국뽀얀 국물 · 돼지 뼈를 24시간 정도 우린 육수경기도용인(백암)돼지 머릿고기, 돼지 뒷다리, 선지, 찹쌀(순대 속), 양배추, 숙주, 부추함경도 출신 상인이 닷새마다 서는 백암장에서 순대와 순대국밥을 팔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일제강점기부터 백암순대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어 정확한 시작 시점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병천순대국밥뽀얀 국물 · 사골 국물(가게마다 배합이 다름)충청남도천안(병천)돼지 소창, 찹쌀, 들깨, 양파, 대파, 선지'병천(竝川)'은 우리말로 '아우내'입니다. 천안 삼거리로 향하는 길목인 아우내 장터에는 순대 국밥집이 즐비했는데, 1960년대에 병천면에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햄 공장이 들어선 뒤 주민들이 햄을 만들고 남은 돼지 내장에 채소와 선지를 넣어 순대를 만들면서 아우내 장터에 순대가 본격적으로 보급됐습니다.
콩나물국밥맑은 국물 · 콩나물국전라북도전주콩나물, 밥, 날계란(또는 수란), 오징어 육수콩나물국밥이라는 이름을 직접 언급한 근대 이전 문헌은 없어 정확한 유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콩나물 자체는 고려시대부터 약재로 기록될 만큼 식용 역사가 길고, 1929년 잡지 『별건곤』은 콩나물국을 '탁백이국'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설렁탕, 평양 어복쟁반과 함께 서민 3대 명물음식으로 꼽았습니다. 흔히 한국전쟁 때 구하기 쉬운 재료로 개발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기록에 따르면 전쟁 이전부터 이미 서민 명물음식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돼지국밥뽀얀 국물 · 돼지머리와 내장을 온종일 삶은 육수전라북도군산돼지머리, 내장, 순대, 막창, 편육, 부추1918년 문을 연 군산공설시장과 옹기전 사이를 흐르던 샛강 주변에서 식당 여러 곳이 영업하며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순댓국'이라 불리다가 1970년대 이후 '돼지국밥'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나주곰탕맑은 국물 · 소뼈를 하루 동안 삶은 육수에 사태·양지머리만 넣은 국물전라남도나주사태, 양지머리, 머리 고기, 목살전라남도 나주의 향토 음식으로, 나주 5일장에서 상인과 서민들이 사 먹던 국밥 요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창평국밥붉은 국물 · 돼지 피(선지)와 콩나물·무를 넣은 육수전라남도담양(창평)순대, 돼지고기, 선지, 콩나물, 무조선시대부터 창평읍내장이 있던 담양창평시장 안에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어 신선한 돼지 부속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창평국밥이 생긴 배경입니다. 끓는 물에 돼지 피를 넣고 콩나물과 무를 뚝뚝 잘라 넣은 뒤 고춧가루를 풀어 밥을 말아 먹던 것이 원조라고 전해집니다.
따로국밥붉은 국물 · 소뼈를 13~14시간 고아 고춧가루·파·마늘로 재탕한 국물대구소뼈, 소고기(양지 등), 고춧가루, 파, 부추, 마늘대구의 향토음식 '대구탕반(육개장)'을 밥과 국을 따로 담아 내는 방식으로 낸 것이 따로국밥이라는 설명이 전해집니다. 밥과 국을 한데 말아 먹는 국밥은 신분 낮은 사람의 음식이라 여겨, 양반의 체면을 고려해 밥과 국을 따로 낸 데서 파생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피순대국밥뽀얀 국물 · 돼지 사골을 이틀간 우린 육수경상북도칠곡(왜관)돼지 선지, 돼지 소창, 당면(소량)칠곡 왜관은 조선시대 일본인이 통상하던 곳이었고, 6·25전쟁 때는 낙동강 방어선의 치열한 접전지였습니다. 전쟁 후 1960년경 미군기지가 들어섰고, 1960년대부터 왜관역 주변에 순댓국집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소머리국밥뽀얀 국물 · 소대가리를 7~10시간 고아 기름을 걷어낸 사골국물울산언양소머리, 우설, 부추, 파언양은 일제강점기부터 도축장과 정육점이 성업했습니다.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자수정 광산 개발로 전국에서 노동자가 몰려들며 언양 쇠고기 소비가 급격히 늘었는데, 형편이 넉넉한 이들은 언양식 석쇠 소불고기를, 노동자·서민은 소대가리 등 부산물로 끓인 소머리국밥을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돼지국밥뽀얀 국물 · 돼지 뼈와 고기부산돼지고기, 부추무침, 새우젓한국전쟁을 거치며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이 전한 음식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같은 자료는 유래를 두고 설렁탕이 변했다는 설과 북한 지역 순대국이 변했다는 설도 함께 적습니다.
무안돼지국밥뽀얀 국물 · 소뼈를 오래 고아낸 육수경상남도밀양(무안)소뼈(육수), 돼지고기 수육일제강점기이던 1930년대 후반, 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장 인근의 한 식당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며 이후 여러 대를 거쳐 이어져 왔습니다.
수구레국밥붉은 국물 · 수구레와 콩나물·우거지를 넣은 육수경상남도창녕수구레, 콩나물, 우거지, 선지창녕은 서부 경남지역을 대표하는 우시장으로 유명했습니다. 우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소를 팔고 산 사람들이 점심때 소주와 함께 수구레국밥을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수구레는 예전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먹던 음식으로, 소가죽까지 다 먹던 시절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굴국밥맑은 국물 · 멸치·다시마·파뿌리 육수경상남도통영굴, 무, 미역, 두부, 부추(또는 쪽파)통영은 우리나라 굴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 산지입니다. 청정 다도해와 알맞은 수온, 풍부한 플랑크톤이 굴 양식의 최적 조건을 이루며, 겨울철 보양식으로 굴국밥을 비롯한 여러 굴 요리가 발달했습니다.
소고기국밥붉은 국물 · 사태·양지·홍두깨살을 3~4시간 고아낸 육수경상남도함안사태, 양지, 홍두깨살, 선지, 콩나물, 무, 토란줄기조선후기 장시(場市)가 발달하며 큰 장 인근에는 우시장이 섰는데, 경기 안성·충청 공주·전라 나주·경상 영천·함안이 대표적인 소고기국밥 고장으로 꼽혔습니다. 함안은 조선시대 경상우도의 교통 중심지였고, 가야읍 도항리 우시장의 도축장에서 신선한 소고기와 선지를 바로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이 함안 소고기국밥이 유명해진 배경입니다.
아바이순대국밥맑은 국물 · 순대(대창)를 삶아낸 국물강원도속초(청호동/아바이마을)돼지 대창, 찹쌀, 좁쌀, 선지, 고사리, 숙주한국전쟁 중 1·4 후퇴로 남하한 함경남도 실향민들이 속초시 해변에 판잣집을 짓고 정착하면서, 함경도식 순대를 변형해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고 전해집니다. 마을 이름 '아바이'는 함경도 방언으로 '할아버지'를 뜻하는데, 피난 온 실향민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레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국밥 한 그릇 값이 궁금하시면 국밥 계산기도 있습니다.

출처

이 페이지의 서술은 아래 자료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유래에 여러 설이 있는 경우 하나로 단정하지 않고 설로 적었습니다.

부산 돼지국밥부터 평양 온반까지, 지역별 향토 국밥 21종의 유래와 국물·먹는 법을 한반도 지도에서 찾아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식진흥원·지역N문화 등 출처를 항목마다 밝힌 국밥툴즈 국밥 도감입니다.

국밥은 왜 지역마다 다른가

국밥의 분포는 장터를 따라갑니다. 조선 후기에 장시(場市)가 커지면서 큰 장 옆에는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 곧 쇠전이 섰고 그 자리에서 나온 고기와 부속으로 끓인 것이 장터 국밥이었습니다. 경기 안성, 충청 공주, 전라 나주, 경상 영천과 함안이 소고기국밥으로 이름난 고장으로 꼽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나주곰탕은 나주 5일장에서 상인과 서민이 사 먹던 국밥이 오늘까지 이어졌습니다. 함안 소고기국밥은 가야읍 도항리 우시장의 도축장에서 신선한 고기와 선지를 바로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도축장이 가까우면 남는 부위가 국밥이 됩니다. 담양 창평국밥은 담양창평시장 안에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어 돼지 부속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데서 시작했습니다. 창녕 수구레국밥이 쓰는 수구레는 소가죽과 고기 사이의 질긴 부위입니다. 서부 경남의 대표 우시장이 서던 날 소를 팔고 산 사람들이 점심때 소주와 함께 먹던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천안 병천순대국밥은 1960년대 병천면에 돼지고기를 다루는 햄 공장이 들어선 뒤 남은 내장에 채소와 선지를 채워 순대를 만들면서 장터에 퍼졌습니다.

길목도 국밥을 만듭니다. 아우내(병천) 장터는 천안 삼거리로 향하는 길목이라 길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군산 돼지국밥은 1918년 문을 연 군산공설시장 곁을 흐르던 샛강 주변에서 1920년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울산 언양은 일제강점기부터 도축장과 정육점이 성했습니다.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공사와 자수정 광산 개발로 노동자가 몰리자 형편이 넉넉한 쪽은 석쇠 소불고기를, 서민과 노동자는 소대가리 같은 부산물로 끓인 소머리국밥을 먹었다고 전합니다.

마지막 축은 피난과 이주입니다. 부산 돼지국밥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이 전한 음식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속초 아바이순대국밥은 1·4 후퇴로 남하한 함경남도 실향민이 해변에 정착하면서 함경도식 순대를 고쳐 만든 음식입니다. 칠곡 왜관도 낙동강 방어선의 접전지였다가 전쟁 뒤 미군기지가 들어섰고 1960년대부터 역 주변에 순댓국집이 생겼습니다. 같은 국밥이라도 장터에서 자란 것과 피난길에서 자란 것은 계보가 다릅니다.

곰탕과 설렁탕은 뭐가 다른가

가장 널리 쓰이는 구분은 '곰탕은 고깃국물, 설렁탕은 뼛국물'이라는 통설입니다. 설렁탕은 쇠머리·쇠족·사골·도가니에 사태와 양지머리까지 넣고 열 시간 안팎을 고아내 국물이 뽀얗고 탁한 유백색이 됩니다. 뼈에서 우러난 성분이 국물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반대쪽 극단이 나주곰탕입니다. 소뼈와 파뿌리·양파·마늘을 하루 동안 삶아 육수를 내되 뼈는 국물용으로만 쓰고 그릇에 올리는 고명은 사태·양지머리 같은 살코기 위주입니다. 그래서 같은 곰탕 계열에서도 나주곰탕은 유독 맑고 담백합니다. 뽀얀 국물이면 설렁탕, 맑은 국물이면 곰탕이라는 인상이 여기서 옵니다.

다만 이 구분을 법칙처럼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울산 언양에서는 같은 음식을 두고 소머리국밥과 소머리곰탕을 함께 쓰는데 울산역사문화대전도 표제어는 '언양소머리국밥'이면서 본문은 '언양소머리곰탕'으로 서술합니다. 이름은 지역과 가게의 관습을 따라 굳은 것이라 재료와 국물 색을 함께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설렁탕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임금이 선농단에서 풍년을 비는 친경 의식을 치를 때 소를 잡아 끓여 낸 국밥에서 비롯돼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변했다는 설, 고기 삶은 물을 몽골어로 이르던 말에서 왔다는 어원설(『몽어유해』의 '슈루', 『방언집석』의 '실러·슐루'), '설렁설렁 끓여 설렁거리며 먹는다'는 민간어원이 함께 전합니다. 이 페이지는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적지 않고 전해지는 설을 설 그대로 적었습니다.

국밥·탕·해장국의 경계 — 이 페이지의 수록 기준

이름만으로는 경계가 그어지지 않습니다. 설렁탕과 나주곰탕은 '탕'이지만 밥을 말아 한 그릇으로 먹는 국밥입니다. 양평해장국은 '해장국'으로 굳었지만 선지와 내장·우거지를 넣어 밥과 함께 먹는 점은 같습니다. 대구 따로국밥은 아예 이름에 국밥이 들어가 있으면서 밥을 말지 않고 따로 냅니다. 그래서 이 도감은 이름이 아니라 '한 그릇에 밥과 국물을 함께 먹는 지역 음식인가'를 기준으로 삼아 21종을 골랐습니다.

별칭도 많습니다. 서울 장국밥은 온반(溫飯)·장탕반(醬湯飯)·탕반(湯飯)·국말이로도 불렸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국밥' 항목 안에서 장국밥과 국말이를 함께 다룹니다. 장국밥이라는 이름은 장터(場)가 아니라 간장(醬)으로 간을 맞췄다는 뜻인데 이름만 보고 장터 음식으로 오해하기 쉬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수록 기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요리 자체의 유래나 배경을 다룬 원문을 직접 확인한 것만 넣었습니다. 강원 인제의 황태로 끓이는 국은 이 기준에 걸려 빠졌습니다. 용대리가 황태 최대 산지라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그 국 자체의 유래를 다룬 자료를 찾지 못했고 현지에서 쓰는 이름도 황태해장국·황태국 쪽이었습니다. 재료의 배경만으로 항목을 채우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같은 계보가 여럿이면 하나로 대표시켰습니다. 국제신문은 함안·의령·삼가를 경남 최대 장시로 묶으면서도 '소고기국밥으로는 함안이 대표격'이라고 못 박습니다(영천은 소머리로 국물을 내 결이 다릅니다). 그래서 경남 쇠전 국밥은 함안 한 종으로 넣었습니다. 반대로 개별 가게의 창업연도나 상호는 적지 않았습니다. 같은 노포를 두고 관공서 자료와 가게 홍보물의 숫자가 어긋나는 사례가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맛집 안내도 이 페이지의 범위가 아닙니다.

이북의 국밥과 남쪽에 남은 자취

국밥은 분단 이전에 형성된 음식이라 남한만 그리면 계보가 끊깁니다. 그래서 이 지도는 남한 17곳과 북한 11곳을 합쳐 28개 지역의 한반도 전도로 그렸습니다. 평양 온반(溫飯)은 평양 4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는 평양·평안남도의 잔치 음식이자 향토음식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를 장국밥 형식으로 분류합니다. 더운밥 위에 녹두지짐과 닭고기무침·버섯볶음·숙주나물을 얹고 실지단으로 고명한 다음 끓는 장국물을 붓습니다. 서울 장국밥과 같은 갈래로 묶이지만 육수가 쇠고기 장국이 아니라 닭고기 장국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함흥 가릿국밥의 '가릿'은 갈비를 뜻합니다. 그런데 완성된 그릇에서는 갈빗살을 찾을 수 없습니다 — 갈비는 육수를 내는 데만 쓰고 고명으로는 살짝 데친 선지와 가늘게 채 썬 육회, 두부가 올라갑니다.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 항구도시로 번성해 자원이 넉넉했던 함흥의 일부 부유한 가정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고 전합니다. 예전 함흥에는 가릿국밥집이 곳곳에 있어 명물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국내에서 함흥식 가릿국밥을 내는 곳은 매우 드뭅니다.

남쪽에 남은 가장 또렷한 자취는 속초 아바이순대국밥입니다. 한국전쟁 중 1·4 후퇴로 남하한 함경남도 실향민이 속초 해변에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함경도식 순대를 고쳐 만든 음식입니다. 마을 이름 '아바이'는 함경도 말로 할아버지를 뜻합니다. 내일이나 모레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시로 자리 잡은 사람들이 모여 살며 그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돼지 대창에 찹쌀·좁쌀·선지·고사리·배추 우거지·숙주를 채워 쪄내는 것이 이 순대의 방식입니다. 부산 돼지국밥에도 북쪽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데 유래를 두고 설렁탕이 변했다는 설과 북한 지역 순대국이 변했다는 설이 함께 전합니다.

반면 황해도와 개성에서는 국밥 계열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것은 해주비빔밥·조랭이떡국·개성편수처럼 국밥이 아닌 음식들이었습니다. 지도에서 북쪽 지역이 대부분 회색인 것은 그곳에 향토 국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 원문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적이라는 뜻입니다. 남한의 회색 지역과는 이유가 다르므로 지도에서도 안내 문구를 나눠 두었습니다.

사용법

  1. 지도에서 지역을 누르거나 아래 지역 버튼으로 고릅니다. 처음에는 부산이 선택돼 있습니다.
  2. 선택한 지역의 카드에서 국물 베이스와 국물 색, 주재료, 유래, 현지에서 먹는 법, 헷갈리는 지점을 확인합니다.
  3. 카드에 달린 출처 링크로 그 서술의 근거가 된 원문을 바로 열어 볼 수 있습니다.
  4. 회색 지역을 누르면 왜 수록된 국밥이 없는지 안내가 나옵니다. 남한과 북한은 이유가 달라 문구도 다릅니다.
  5. 맨 아래 '한눈에 보기' 표에서 21종을 국물 색·주재료 기준으로 견주고, 인용한 자료를 발행처별로 확인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곰탕과 설렁탕은 뭐가 다른가요?
A. '곰탕은 고깃국물, 설렁탕은 뼛국물'이라는 통설이 가장 널리 쓰입니다. 설렁탕은 쇠머리·쇠족·사골·도가니를 열 시간 안팎 고아내 국물이 뽀얗고 탁합니다. 나주곰탕은 소뼈를 육수용으로만 쓰고 고명에는 사태·양지머리 같은 살코기를 올려 국물이 맑고 담백합니다. 다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울산 언양처럼 같은 음식을 소머리국밥과 소머리곰탕으로 함께 부르는 곳도 있어 이름보다는 재료와 국물 색을 함께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Q. 부산 돼지국밥은 정말 피난민 음식인가요?
A. 그렇게 전해지지만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이 전한 음식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1950년 부산 범전동 일대에 들어선 미군 부대 주변에서 나온 돼지 부산물로 피난민들이 탕국을 끓여 먹은 데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같은 자료가 유래에 관해 설렁탕이 변했다는 설과 북한 지역 순대국이 변했다는 설 두 가지를 함께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 페이지는 어느 하나를 정설로 적지 않았습니다.
Q. 밀양 무안돼지국밥은 부산 돼지국밥과 같은 음식인가요?
A. 이름은 같지만 계보가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국물입니다. 부산은 돼지 사골을 우리지만 밀양 무안돼지국밥은 소뼈로 국물을 냅니다. 생겨난 시기도 달라서 무안돼지국밥은 1930년대 후반 밀양 무안면의 무안장 인근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전하니 한국전쟁 이전입니다. 돼지국밥이라는 한 이름 아래 피난민 유래로 설명되는 갈래와 그 이전 장터 음식의 갈래가 함께 들어 있는 셈입니다.
Q. 따로국밥과 육개장은 다른 음식인가요?
A. 국물은 사실상 같습니다. 둘 다 대구의 향토음식인 대구탕반을 가리키고 차이는 밥을 국에 미리 마느냐 따로 내느냐입니다. 밥을 말아 먹는 국밥을 두고 체면을 따지던 분위기 때문에 국과 밥을 따로 내는 방식이 생겼다는 설명이 전해집니다. 소뼈를 열서너 시간 고아 낸 국물에 고춧가루와 파·부추·마늘을 넣어 얼큰하게 끓이는 것이 대구식입니다.
Q. 전주 콩나물국밥은 한국전쟁 때 생긴 음식인가요?
A.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문헌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1929년 잡지 『별건곤』 12월호가 콩나물국을 '탁백이국'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설렁탕, 평양 어복쟁반과 함께 서민 3대 명물음식으로 꼽았습니다. 전쟁 이전에 이미 대중적인 음식이었다는 뜻이라 전쟁 기원설은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콩나물국밥이라는 음식명을 직접 적은 근대 이전 문헌은 없어 유래 자체가 고증되지는 않습니다.
Q. 수구레국밥은 창녕인가요, 대구 현풍인가요?
A. 둘 다 맞는데 가리키는 것이 다릅니다. 이 지도는 우시장 문화라는 역사적 배경을 기준으로 경남 창녕에 표시했습니다. 창녕은 서부 경남의 대표적인 우시장 고장이었고 장이 서는 날 소를 팔고 산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 수구레국밥이었습니다. 반면 지금 식당가가 몰려 있는 곳은 행정구역이 다른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입니다. 두 곳은 인접해 있지만 별개 지자체입니다.
Q. 장국밥은 장터에서 팔던 국밥인가요?
A. 아닙니다. 이름의 '장'은 장터(場)가 아니라 간장(醬)입니다. 소금이 아니라 간장으로 간을 맞춘 국물이라 장국밥입니다. 19세기 말 조리서 『규곤요람』에도 밥 위에 장에 조린 고기를 얹고 그 장물을 붓는 조리법이 실려 있습니다. 제사 뒤 남은 음식을 한데 모아 먹기 편하게 만든 데서 비롯됐다는 유래도 함께 전합니다.
Q. 지도에서 비어 있는 지역은 무슨 뜻인가요?
A. 이유가 두 가지라 지도에서도 문구를 나눠 두었습니다. 남한의 회색 지역은 전국구로 알려진 향토 국밥이 따로 없다는 뜻이지 그 지역 음식에 대한 평가가 아닙니다. 국밥은 장터와 길목을 따라 퍼진 음식이라 분포가 고르지 않습니다. 북한의 회색 지역은 우리 쪽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적이라 비워 둔 것이며 향토 국밥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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